[기고] ‘거룩한 행정가’ vs ‘영예로운 혁명가’
[기고] ‘거룩한 행정가’ vs ‘영예로운 혁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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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7.19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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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애 미라클엣지 컨설팅 대표
장정애 미라클엣지 컨설팅 대표

“은사에게 존경과 감사를 드리며 양심과 위엄으로 의술을 베풀고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고 환자가 알려준 모든 내정의 비밀을 지키며 위업의 고귀한 전통과 명예를 유지하고 동업자를 형제처럼 생각하겠노라.”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일부이다. 자못 거창한 이 선서문은 일반인들은 자세히 알지도 못한 채 BC 40년경부터 의사에게 특별히 요구하는 높은 도덕심과 양심을 기대하는 근거가 되어왔고 그것이 실현된 예는 슈바이처 외에도 한국에서도 책 한 권을 빼곡히 채울 만큼 많다. 환자의 생명을 살릴 뿐 아니라 어려운 가정과 사회적 환경까지 살펴 운명의 거친 물결까지 바꿔주는 의사의 직분!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훌륭한 일들을 만들어 내는 의사들은 많지만 알고 있는 훌륭한 본(本)을 추려본다. 

◆ “이 환자에게 닭 두 마리 값을 내주시오”라고 적힌 장기려 박사의 처방전

“이 약을 먹으면 차도가 있을 것이니 며칠 뒤에 다시 찾아주시오. 돈이 없어도 되니 꼭 오셔야 하오.” 영양이 부족한 환자에게 닭을 고아 먹을 돈을 그의 급여에서 내주라고 처방전을 써주고 평생 무소유를 실천한 장기려 박사의 이러한 일화는 수없이 않다. 그는 아버지가 설립한 의성초등학교를 거쳐 경성의학 전문학교에 입학하여 1932년에 수석으로 졸업한 후 경성의전 외과학교실의 조수로 백인제 교수의 제자로 사사하고 의학박사 학위 취득 후 서울대, 부산대, 가톨릭대의 의과대학 외과학 교수 등으로 재직하였고 1948년 국내 처음으로 간암 환자의 암 덩어리를 떼어내는 일제 강점기 일본 의학계에서도 성공하지 못했던 수술에 성공했다.

성산 장기려 박사의 생전 진료 장면
성산 장기려 박사의 생전 진료 장면

장기려 박사는 한국전쟁 중 환자이송 차를 타고 남하하여 평생 북에 두고 온 가족을 향한 그리움 속에 살았다. 가난한 환자에겐 자신의 월급을 털어 대납하는 것을 병원에서 반대하니 나중엔 문을 슬쩍 열어놓고 도망가도록 한 ‘바보이야기’. 또 초창기 무료진료기관인 복음병원 운영 시 모든 직원의 월급을 식구 수대로 나누어 아들 하나만 데리고 있던 자신은 운전기사와 같은 월급을 받아 ‘공산당식 분배 정책’이란 말도 생겼다. ‘건강할 때 이웃 돕고 병 났을 때 도움 받자’라는 슬로건으로 1968년 한국 최초의 의료보험조합을 발족시켜 한국 의료보험제도의 모태가 되기도 했다. 한국청십자사회복지회를 설립해 막사이사이 사회봉사상 수상, 산복음간호전문대학 설립, 만성간질환자들 모임인 부산장미회 창설과 무료진료, 거제도 애광원 후원회장, 부산 생명의 전화 개설, 한국장애자 재활협회 부산지부장 등을 역임하며 헌신적으로 봉사한 공로를 인정 받아 대한민국 국민훈장 동백장, 호암상 사회봉사부분, 인도주의 실천 의사상, 국민훈장 무궁화장 등을 받았다. ‘가난하고 헐벗은 불쌍한 환자들의 의사가 되겠다’ 결심하고 평생 최선을 다한 그는 춘원의 소설 <사랑>의 주인공인 의사 안빈의 실존 모델이다.

◆아시아의 슈바이처, 백신의 황제, 세계 보건 대통령! WHO 사무총장 이종욱

아마도 이종욱 사무총장은 의사로서 가장 많은 별명을 지녔을 것 같다. 의과대학 시절 나자로 마을에서 한센병 환자를 위한 봉사를 시작했고 그 때 만난 일본 여성과 결혼하고 졸업 후 하와이대 보건대학원에서 ‘전염병학’으로 학위를 받고 사모아에서 한센병 환자를 치료하여 ‘아시아의 슈바이처’라는 별명을 얻은 이종욱 박사. 질병예방국장 시절엔 서태평양 지역의 소아마비 퇴치 사업을 주도해 그가 일하는 동안 6천 건에 달하던 소아마비 발병 보고가 700여 건으로 줄었고, 제네바에서 예방백신사업국장을 역임하는 동안 1억 7500만 명의 어린이에게 접종을 실시해 1년 만에 소아마비 발생률은 세계 인구 1만 명당 1명으로 줄어 미국 Scientific America로부터 ‘백신의 황제’라는 별명도 얻었다.

스위스 제네바 WHO 본부 JW Lee Center for Strategic Operation 홀에서 거행된 초상화 제막식. 이곳은 생전에 이종욱 박사가 심혈을 기울여 새로 정비한 곳이다. 제막식에 앞서 참석자들이 고인에 대한 묵념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현 WPRO 사무처장, 이 박사 미망인 레이꼬 여사, 마가렛 찬 WHO 사무총장, 김성이 보건복지가족부 장관, 통역, 박종화 재단 총재 (사진 한국국제의료보건재단)
스위스 제네바 WHO 본부 JW Lee Center for Strategic Operation 홀에서 거행된 초상화 제막식. 이곳은 생전에 이종욱 박사가 심혈을 기울여 새로 정비한 곳이다. 제막식에 앞서 참석자들이 고인에 대한 묵념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현 WPRO 사무처장, 이 박사 미망인 레이꼬 여사, 마가렛 찬 WHO 사무총장, 김성이 보건복지가족부 장관, 통역, 박종화 재단 총재 (사진 한국국제의료보건재단)

결핵국장 자리에 오른 후 ‘글로벌 결핵퇴치 파트너십’과 ‘국제의약품기구’를 설립하여 결핵 치료제를 공급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냈다. 2003년 WHO 사무총장으로서 ‘3 by 5’ 프로젝트로 2005년까지 개도국 3백만 명의 AIDS 환자에게 치료제를 공급하겠다고 선언하고 40억 달러 재원 마련을 위해 년간 150일 넘게 30만 Km를 출장 다니며 ‘Man of Action(행동하는 사람)’ 이란 별명도 얻었다.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는 뜨거운 열정은 병이 발생하기 이전의 예방의학과 백신접종으로 에너지를 집중 시켰고 뛰어난 행정력으로 세계보건기구의 수장 자리에 올라 펀드 조성의 실력까지 보여주었지만 2006년 세계보건총회를 하루 앞두고 뇌졸중으로 쓰러져 삶을 마감했다. 2016년 10주기 추도식이 WHO에서 열렸고 서울대 의대에는 이종욱 글로벌의학센터가 만들어졌고 그를 기리며 국제의료 문제에 대한 교육, 연구, 정책자문, 국제공헌 실천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 ’한국의 슈바이처’, ‘톤즈의 성자’ 돈 보스코 이태석 신부 

성직자, 의사, 생활 개혁자, 교육자…… 부산에서 4남 6녀 중 아홉 번째로 태어나 인제대 의대를 졸업하고 군의관으로 군복무를 마친 후 어릴 때부터 성당을 다니며 꿈꾸었던 소명의 길을 가고자 가톨릭 살레시오 수도회에 입회하였고 광주 가톨릭대 신학대학에 편입하여 성직자의 길을 걸은 이태석 신부. 이탈리아 로마로 유학 도중 부제서품을 받고 귀국 후 사제서품을 받고 나서 2001년 오랫동안 내전으로 폐허가 된 아프리카 수단의 톤즈에 선교 사제로 부임하였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흙 담을 쌓고 지풀로 지붕을 엮어 병원을 세우고 말라리아, 콜레라, 나병환자들을 치료하였다. 톤즈 강물로 콜레라가 창궐하자 여러 곳에 우물을 파서 식수 공급을 해결하고 하루 한끼를 겨우 먹는 생활에서 탈피하기 위해 농경지도 일구고 초등학교로 시작해 중고등학교 과정을 개설하며 학교 건물도 지었다. 

전쟁으로 상처받은 원주민들을 치료하기 위해 음악이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 후 학생들을 선발해 브라스밴드도 구성해 정부행사에도 초청되어 연주하기도 하며 매주 오지로 치료 가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으나 8년간의 봉사하는 동안 2년마다 한국에 들려 건강검진을 받던 2008년에 대장암 4기로 판정 받았고 그럼에도 톤즈로 돌아가고 싶어하였으나 결국 2010년 선종하였다. 

그는 “워낙 가난하니까 여러 계획을 세웠으나 시간이 갈수록 같이 있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어려움이 닥친다 해도 그들을 저버리지 않고 함께 있어 주고 싶었다”며 목을 빼고 그가 오기를 기다리는 톤즈로 돌아가지 못함을 안타까워했다. ‘남수단의 슈바이처’, ‘톤즈의 성자’는 2018년부터 남수단의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 희생과 봉사 정신을 일깨워주는 첫 외국인 사례가 되었다. 눈물을 흘리는 것을 수치로 여기는 딩카족 사람들이 이태석 신부의 죽음 앞에선 눈물을 흘려 그의 영화는 ‘울지마 톤즈’가 되었다.

◆ 의사 신부의 ‘거룩한 우울증‘ – 김중호 신부

‘거룩한 우울증’은 동아일보 칼럼 제목이었다. 아버지는 고려대 의대 교수 외과의사, 작은 아버지들도 모두 의사여서 할아버지는 집안 의사들을 모아 종합병원을 차리는 게 소원이라 500평의 땅을 사두었고 형은 서울대 의대 동생은 고대 의대에 진학했으니 서울대 의대를 다니던 김중호 신부를 포함한 4부자는 매일 밤 식탁에서 밤참을 먹으며 가족병원의 꿈을 키워갔다. 초등학교 시절 오전 6시면 일어나 성당에 들러 아침미사에 쓸 포도주와 성경을 준비하는 복사의 일을 하면서 어머니가 나누어준 간식은 책상서랍 속에 숨겨뒀다가 다음날 형편이 어려운 친구에게 먹이곤 했는데 그를 눈 여겨 보던 그의 멘토였던 이경재 신부가 “네 집안에 육체를 고치는 의사는 많으니 너는 영혼을 위로하는 사제가 되어라”고 한 말이 신의 소명으로 다가와 서울대 의대 본과 2년 과정을 마치던 겨울, 의대를 자퇴하고 신부가 되겠다 선언했다. 

가톨릭대 신학대에 입학해 공부하던 2년째 아버지가 자퇴가 아닌 휴학 처리를 해둔 서울대 의대에서 연락이 와서 의대를 졸업한 후에 다시 신학대로 돌아와 사제서품을 받고 10년간 쓰레기로 악취가 코를 찌르는 난지도에서 환자들을 보살피다 1987년 학교에 2주간 휴가를 내고 에콰도르로 날아갔다. 단 한번도 의사를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사는 해변 마을 팔마에 도착해 40도의 더위 속에 신장병, 암 환자까지 치료를 하곤 한국으로 돌아와 가톨릭대 의대 교수로, 가톨릭 생명윤리연구소장으로 일하며 모은 전 재산과 가톨릭학원에서의 후원금을 합해 ‘국제의료봉사단’을 꾸려 2705명의 환자를 돌보았고 케냐, 몽골, 동티모르를 다니며 치료 봉사하다 말라리아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35년 대장정을 끝낸 2007년까지 3만5천여 명을 치료했고 지금은 후배들이 대를 잇고 있다. 대장정 35년은 서울에 있는 동안 주말마다 성당을 다니며 추가 헌금을 걷고 성모병원과 가톨릭대 의대, 서울의대, 의사협회 등을 찾아 다니며 약값을 모으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속으로 끙끙 앓았던 35년 봉사가 끝나니 “평생 너무 과로하셨네요. 돈을 모아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심하시고요”라는 다른 의사의 진단으로 우울증임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막내 여동생이 보살피고 있으나 병세가 호전되자 콜롬비아를 욕심 내고 있다. 안국동 외과병원을 운영했던 그의 아버지는 돈이 없어 우물쭈물하는 환자에겐 “나중에 벌어 갚으라”고 말하던 분이었고, 형 김명호씨는 정부파견의사를 지원해 우간다, 케냐, 말라위 레소토에서 진료했던 봉사 가족이다. 동아일보에서 보고 김중호 신부님 이야기를 어느 선배에게 했더니 ‘신부님을 보살피는 막내 동생 김남희가 대학 동문’이라 해서 선배인 줄 알게 되었다. 신부님의 건강을 빈다. 

◆ ’내 고향은 전라도 내 영혼은 한국인’, John Linton 인요한 교수

할아버지 윌리엄 린턴은 한국에서 48년간 의료, 교육, 선교 활동을 하였고 아버지 휴 린턴은 군산에서 태어나 전남 도서지역에 600여개의 교회를 개척한 선교사이면서 인천 상륙 작전에 참전하기도 했다. 형 인세반(스티브 린턴)은 외증조부 이름을 딴 ‘유진벨’ 재단의 회장으로 동생 인요한 교수와 함께 북한결핵퇴치 사업과 의료장비 지원사업 등 자선사업을 펼치고 있다. 1895년부터 5대가 살며 한국에 선교와 봉사, 의료활동을 펼치고 있으니 120년 넘는 명문가가 한국에서 세워지고 있는 것이다. 2012년에 ‘대한민국 내 외국 국적 불행사 서약’으로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지 않고도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선대의 업적으로서가 아닌 자신의 공로로 특별귀화를 허가 받은 첫 사례이다. 

그는 정작 ‘나는 거꾸로 도움을 많이 받은 사람이에요’라며 ‘5.16 혁명과 박정희 대통령의 정책 때문에 하나님께 제일 감사하고 대한민국을 잘 살게 한 박정희 대통령에게 철이 들고 난 후에야 감사함을 알았다’한다. 노무현 전대통령 취임 5일 만에 이북전문가로 비밀리에 만났을 때 “이북의 상황은 집안에 정신박약아를 키우는 것과 같습니다. 상황이 골치 아픕니다. 10년, 20년 갈 수 있는 아주 단단한 정책을 펴셔야 합니다. 가슴이 뜨거운 정책을 펴시면 안 됩니다. 냉정한 이성으로 정책을 펴십시오”라고 직언을 했던 당찬 의사 인요한. “우리가 잘하면 그이들도 우리에게 잘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잘하면 핵도 포기하고…”라는 되물음엔 “그 사람들 핵 포기 안 합니다. 절대로 포기 안 합니다. 숨어서 몰래 라도 핵을 만듭니다. 남쪽의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그들한테 잘해 주면 그들도 우리한테 잘 할거라는 그런 오해, 그런 잘못된 생각이 더 큰 문제입니다.” 해서 대통령으로 하여금 담배를 찾게 했던… 한국 국적이 없던 미국 시민으로서의 용기 있는 발언이었다. 

1984년 순천에서 교회 짓는데 쓸 자재를 운반해오다 관광버스에 치였는데 구급차가 없던 시절이라 택시로 가는 도중 사망한 아버지로 인해 한국의 응급의료체계를 혁신적으로 바꾸겠다고 결심을 한 인요한. 결국 아버지 조의금으로 구급차를 한 대 만들어 순천 소방서에 기증하고 어느 독지가의 도움으로 미∙영∙프 등을 다니며 구급차와 응급구조 시스템을 연구하여 1995년 한국형 구급차를 개발해 119 응급구조 체계의 기초를 닦은 푸른 눈의 의사는 2005년에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상했다. 부정할 수 없는 객관적 시각을 유지하여 절절한 애국심으로 한국인의 장단점에 대해 특강을 하기도 하며 가톨릭대 국제의료통역관광 과정 강의 중에 “의료 서비스에서는 ASK만 기억하면 된다. Attitude(태도), Skill(지식을 효용성 높게 펼칠 수 있는 기술), Knowledge(지식)이 그것이다”고 했던 말은 필자가 그 후 강의실에서 매번 인용하는 말이다. 

한국 국제보건의료재단의 총재로도 활약하고 있으며 2014년엔 대한민국인권상인 녹조근정 훈장도 수상하였다. ‘국제진료센터가 전산화 되기 이전엔 CT촬영도 공짜로 해줬는데 이젠 안 된다’며 전라도 사투리도 거침없고 영어가 모국어인 그는 연세대 의대 학사 졸업 후 서양인 최초로 의사고시에 합격했고 고려대 의대대학원 박사로서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장을 맡고 있어 한국의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를 객관적인 입장에서 외국에 널리 알릴 적임자이다. 그는 스러져가는 보수를 일으킬 ‘히딩크 같은 사람’으로 한국당 비대위원장에 추천되기도 하는 등 정치계에서도 주목 받고 있다.

◆ 개인에게 맞추어지는 제품∙서비스 vs 여전히 집단과 조직의 구성원인 개인

비행기 좌석마다 모니터가 달려있고 한국에서도 오페라 극장 객석 뒤에 개인용 자막이 제공된 지도 10년이 넘는다. 한마디로 개인이 세상에 맞추려는 노력보다 세상이 개인에게 customized 되는 경향이 AI시대와 더불어 점점 두드러지고 있다. 그럼에도 개인에게 맞추는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은 여전히 조직에 속해있고 discipline(훈련) 되어야 한다. 

대여섯 명의 의사가 열 시간을 넘게 해야 하는 심장수술의 수술비와 앞 트임, 뒤 트임 쌍꺼풀 수술비가 비슷하다면 누가 힘든 길을 걷겠다 하겠는가. 개인적으로 개업도 어려운 흉부외과에 지원 레지던트가 없다면, 지원해서도 너무 어려워 포기해서 명문 의과대 병원도 대가 끊기는 형편인 3D 업종이라 치부된다면, 우리는 곧 외국에 나가 수술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부유한 사람들에겐 차선 혹은 최선까지 가능하다 하더라도 국민 대다수 서민들을 살려야 하는 정부는, 복지부는 무엇을 고쳐야 하겠는가? 상위 1%의 인재들이 50년 넘게 세워 놓은 최첨단 의료기술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에 일어날 수도 있다. 응급실 의사들에게 ‘폭언이나 폭행 당해 보았는가’라는 질문에 92%가 ‘그렇다’는 답을 내는 현실에선 청원경찰 상주를 시급히 시행해야 한다. 의료계의 위기 의식을 인식하고 대통령 산하 복지부, 대학병원, 개원의, 보험공단이 모여 논의를 거쳐 국민들에게 의료보험료를 올려야만 한다는 고통 분담 호소를 합의해 내야 할 시점이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인은 다각적으로 높은 수준을 요구 받지만 모든 접점에서 가장 중요한덕목으로 꼽는(필자가 운영하는 국제의료통역관광 과정의 17기까지의 수강생 모두 첫 째 덕목으로 뽑은) attitude(태도)를 유지하면서 knowledge(지식)를 습득하고 수련의∙전공의 과정에서 skill(기술)을 배우는 10년! A∙S∙K는 어느 부분도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삼각대이다. 기대치가 높은 사회적 요구, 한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진료 과정, 그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불가피하다는 구조적 압박 등 우리의 생명이 걸려있다고 일방적으로 희생을 요구하는 시대는 지났다. 적어도 이 모두에 합당한 보상시스템은 자리 잡아야 유능한 인재들이 기꺼이 긴 시간 희생할 각오를 하지 않겠는가? 기대치와 실제의 갭을 살피고 간격을 줄여야 한다. 

‘의사로 훈련시켜준 은사에게 존경과 감사를 드리며(전공의 법으로 주 80시간 근무가 시행됐다고 수술 도중에 장갑 벋고 나가더라는 말을 들으며 할 말을 잃고), 나는 양심과 위엄으로 의술을 베풀고(병원 홍보를 위해 연예인에 무료 시술을 해주는 현실엔 우울하며),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고(한국 의료기술이 선진국을 능가하는 수준에 올랐다는 소식엔 수련의 전문의들의 3시간 수면으로 훌륭한 유전자를 지닌 민족임을 입증해줘 가슴이 찡하며), 환자가 알려준 모든 내정의 비밀을 지키며(누워있는 환자를 배경으로 V자를 그리며 셀카를 찍는 행위엔 아연 실색하게 되며), 위업의 고귀한 전통과 명예를 유지하고 동업자를 형제처럼(지도교수의 상해에 가까운 전공의에 대한 폭력, 교수의 전공의에 대한 성추행이 지면을 메운 것을 볼 때는 참담함을 느낀다) 생각하겠노라… 초심으로 돌아가도록 시스템을 갖추자. 의료계에서 드러나는 불미스러운 일들은 그야말로 아주 극소수의 일이거나 반대로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다. 이 시점에서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전수함에 위업의 고귀한 전통과 명예를 유지하고 동업자를 형제처럼 생각하여 힘들고 열악한 군대식 서열문화와 도제식 교육 현실 환경을 개선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노라’, ‘나는 전수해주는 지식을 존경과 감사로 받아들이며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며 양심과 위엄으로 의술을 베풀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노라’가 지속되도록, 앞으로도 선배들의 헌신을 본 받아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서 시스템으로 지원할 것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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