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악재 속에서도 면세시장은 왜 과열될까
[기자수첩] 악재 속에서도 면세시장은 왜 과열될까
  • 김태희 기자 alttab235@dailyenews.co.kr
  • 승인 2020.06.19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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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 경제산업부 기자
김태희 경제산업부 기자

[데일리e뉴스= 김태희 기자] '부루마블'이라는 게임이 있다. 주사위를 굴려 땅을 사고 통행세를 받아 상대를 파산시키면 이기는 것이 룰이다. 전적으로 주사위 운에 승패가 갈리는 게임이지만 그 안에 시장경쟁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면세점업계를 취재하면서 항상 부루마블을 떠올렸다. 어떻게 해서든 특허권 하나를 더 따내려는 기업들의 절박함이 주사위를 꼭 쥔 손을 연상케 했다. 사업자의 재량도 중요하지만 주변 환경에 따른 변수가 많아 운도 무시할 수 없는 것도 비슷하다. '살아남는 자가 이긴다'는 공식도 맞물린다. 1988년 당시 국내에는 34개 면세점이 있었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 경쟁에서 도태된 많은 사업자들이 스스로 면세점을 닫았다. 그나마 서울에 롯데와 신라 등 6개 시내면세점이 살아남았다.

국내 면세산업이 부흥하기 시작한 것은 2009년부터다. 연평균 20.5% 성장률을 기록하며 2015년에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수식어가 꼬리표처럼 따라 붙었다. 동시에 대기업의 독과점이라는 뭇매도 맞았다. 6개였던 서울 시내면세점이 11개로 늘어난 배경이다. 시장경제 논리에 따라 사업자들이 경쟁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호황기는 길지 않았다. 2017년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으로 면세업계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중국인 관광객 수가 전년 대비 40%나 줄어들면서 '적자'와 '철수' 두 가지 카드 중 하나를 골라야만 할 정도였다. 결국 부산항 현대페인트면세점, 양양국제공항 주신면세점, 평택항 하나면세점, 제주국제공항 한화갤러리아면세점이 줄줄이 철수하며 관세청에 사업권을 반납했다.

올해는 감히 말로 표현하기 힘든 정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중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 삽시간 퍼졌다. 지난 3월 기준 입국제한 국가는 181개로 확대됐고 하늘길이 끊기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국가가 문을 걸어 잠갔고 들어오는 관광객도 나가는 출국자도 없는 추세다. 하루 22만 명이 드나들던 인천공항 여객 수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3000명대로 줄었다. 면세업계 매출도 전년 동기 대비 86.5% 급감했다. 유례없던 경영위기에 봉착했지만 묘수가 없는 것도 문제다. 면세품이 국내 백화점과 아웃렛에 풀리기 시작한 것도 상황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대변한다. 롯데와 신세계, 신라 등 국내 대기업 면세사업자들은 지난 5월부터 이달 말까지 면세점 명품 재고들을 반값에 내놓는다. 눈물을 머금고 세일을 강행하고 있다. 또 대한항공은 기내판매사업부(기내면세점) 매각을 추진하고 있고,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사업권은 6개가 유찰됐다.

이런 상황에서도 신규 특허를 받아낸 사업자들이 있다. 관세청은 지난 18일 서울 시내면세점 신규 사업자로 동무를 선정했다. 김포공항 입국장 면세점에는 그랜드관광호텔이, 제주 성산포항 지정면세점에는 제주관광공사가 특허를 취득했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현재 국내 면세점 사업장은 총 55개다. 서울 시내면세점만 11개에 달하고 서울 외 시내면세점은 10개다. 출국장 면세점 28개, 지정·입국장 면세점은 6개다. 사업권 취득 후 개점을 하지 않은 면세점과 이번에 신규 특허를 획득한 면세점까지 합하면 60개에 육박한다. 면세업계 판을 짜는 관세청은 2015년 이후 계속해서 진입장벽을 낮추고 있다. 게임 참가비처럼 매년 공항면세점에서 걷는 임대료로 큰 수익을 내는 것도 사실이다. 주변 상황이야 어떻든 기회가 있을 때 판에 뛰어들라며 손에 주사위를 쥐어주는 꼴이다.

면세 사업자들의 흥망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기업들에게 도의적인 책임을 요구하는 것처럼 관세청 역시 최소한 플레이어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면세산업 자체가 외교에 의해 크게 좌우되고 코로나19처럼 예상치 못한 변수가 많은 만큼 '일단 들어와' 식의 운영은 고려해야 한다. 사업자가 떠난 자리를 다른 사업자로 채우는 방식도 면세산업의 외형만 계속해서 키울 뿐이다. 면세산업의 시장참여가 자유롭지 않은 만큼 좋은 말로 '기회'지만 지금까지 사업권을 반납한 여러 사업자들이 관세청의 소모품처럼 비춰보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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