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축하받지 못한 유통업계 속사정과 코로나19
[기자수첩] 축하받지 못한 유통업계 속사정과 코로나19
  • 김태희 기자 alttab235@dailyenews.co.kr
  • 승인 2020.07.02 17:2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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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 경제산업부 기자
김태희 경제산업부 기자

[데일리e뉴스= 김태희 기자] '수천 명의 인파가 몰렸다'란 말이 이제는 무섭게 들리는 시대다. 불과 몇 달 전만해도 이 말은 유통업계 최고의 칭찬과도 같았다. 새 점포를 출점할 때면 기업들은 오픈 첫날·일주일·주말·한 달 단위로 방문객 수와 매출 등을 공표하며 자랑하기에 여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달라졌다. 현대백화점은 지난달 26일 대구 유성구에 프리미엄아울렛을 오픈하고도 기본적인 보도자료조차 내지 않았다. 2017년부터 준비했으며 총투자액 3003억원 규모의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입도 벙긋 못하는 모양새가 씁쓸하기까지 했다. 상황이 이러니 방문자 수 공개는 어림도 없었다. '사람이 몰렸다'라는 것만으로도 듣는 사람들의 미간이 찌푸려질 테니 말이다.

특히 대전 지역은 오픈 열흘 전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늘고 있었다. 많은 이들의 걱정과 우려가 무색할 정도로 현대프리미엄아울렛 대전점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친구와 연인사이, 가족 단위의 유모차 부대까지 다양했다. 심지어 갓난아기를 안고 방문한 사람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많은 생각이 교차됐다. 설날부터 여름이 된 지금까지 외출 한번 하지 않았던 내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 속에 서있었다.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은 생각과 코로나19에 대한 공포,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웃렛을 오픈할 수밖에 없었던 유통업계의 속사정. 그 어느 누구를 탓할 수도 무작정 비난할 수도 없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브랜드 매장 직원은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 매장에서 근무하다가 대전으로 발령을 받아 내려왔다고 했다. 그는 "오픈 준비를 거의 끝마친 상황에서 문을 못 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컸다"고 털어놨다. 서울 매장엔 이미 자신을 대신할 사람이 채워진 상태였다. 아웃렛에 입점한 280여개 브랜드가 장사도 못한 채 임금을 지불해야하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이들을 무작정 무급휴가를 보낼 수도 없는 터였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공간에 격리돼 지낼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이는 국가의 모든 경제활동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직장을 잃고, 이들이 다시 일용직근로자로 물류센터에 몰렸다가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해 2차 피해를 입은 것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코로나19 발생 이전의 세상은 이제 다시 오지 않습니다." 지난 4월11일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이 정례브리핑에서 했던 말이다. 그리고 6월 27일 그는 "환자 발생이 조금만 가라앉으면 다시 코로나19 이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는 착각이 원인"이라며 "개개인 활동, 사업장에서의 작업, 음식점 서비스 등도 달라져야 하며 사회 전체가 시간이 걸릴 뿐 이미 변화하고 있다"고 다시금 강조했다.

우리 사회는 코로나19를 두고 극과 극에 치달아 있다. 코로나19 이전의 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면, 우리는 분노를 표출할 대상을 찾을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그 변화에 모두가 동참해야 한다.

현대프리미엄아울렛 대전점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으로 오픈한 대규모 유통시설이다. 건물 입구마다 발열검사를 하고 있었고, 매장 곳곳에는 손소독제가 비치돼 있었다. 사람들이 앉았던 의자와 손잡이를 소독제로 닦는 청소업체 직원들도 계속해서 보였다. 계산대 앞에는 1m 간격을 유지할 수 있는 스티커가 부착돼 있었다. 각 브랜드 매장 입구에는 마시고 있던 음료수나 커피 컵을 들고 들어갈 수 없도록 수거함이 생겼다. 코로나19로 인한 새로운 쇼핑문화가 생겨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정부나 기업이 할 수 있는 조치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개개인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역을 해야 한다. 이날 아웃렛을 방문하고 아쉬웠던 점이 바로 방역에 대한 시민의식이었다. 어른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뛰어노는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답답한지 마스크를 벗고 있었다. 또 매장 내부에서 물건을 고를 때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실천되지 않고 있었다. 더운 날씨에 마스크를 내리곤 걸어 다니면서 커피와 음료를 마시는 사람들도 종종 보였다.

힘든 상황 속에서 코로나19와 싸우는 의료진과 이 모든 사태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생산·제조·유통 기업들이 있다. 이런 유통시설이나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은 마스크 끈 때문에 귀 뒤쪽이 벌겋게 헐어있다. 이들의 모든 노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가 소비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나와 내 주변인, 나아가 우리 사회의 '건강 안전'보다 '명품 할인'이 더 중요할 순 없다. 한정 상품과 할인에 무질서를 택하고, 아이들이 마스크를 쓰기 싫어한다고 아무런 가르침 없이 '그렇게 해라'고 말할 수 없는 시대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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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범 2020-07-03 09:18:45
세상살이가 많이 달라진 느낌이요
세상이 변하는속도를 우리는 얼마나 따라가고 있는걸까요?
아무도 가보지않은 코로나19 세상살이에 큰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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