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공명정대하게 보이지 않는 검찰

2020-06-08     전수영 기자
전수영

[데일리e뉴스= 전수영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법원이 어떻게 판단할지에 대해 이목이 쏠리고 있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돼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지 2년 4개월 만에 또다시 구속 기로에 선 것이다.

검찰은 이 부회장이 경영 승계 과정에서 불법을 저질렀다고 보고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제일모직의 합병 비율을 높게 산정하기 위해 삼성물산의 가치를 하락시켰다는 것이다. 여기에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 변경 또한 철저한 계획에 따라 이뤄졌다고 판단하고 있다. 삼성은 이 부회장이 이 같은 일련의 일에 대해 보고를 받은 적도 지시를 받은 적도 없다고 맞서고 있다.

결론은 검찰이 증거를 통해 범죄사실을 증명할 수 있느냐로 귀결될 것이다. 명확한 증거가 있다면 이 부회장의 처벌은 당연하고, 추측과 정황증거만 있다면 이 부회장은 처벌을 받지 않게 된다. 모든 것은 검찰이 그동안 얼마나 철저히 수사했느냐일 것이다.

하지만 짚고 넘어갈 것은 다름 아닌 이 부회장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시점일 것이다. 검찰은 지난 4일 전격적으로 이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의 전임 고위 임원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부회장이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 신청을 한 지 딱 하루 만이다. 이 부회장이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인지 알고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 신청을 한 것인지, 반대로 이 부회장이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신청을 고깝게 본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인지 알 수는 없다. 선후를 따지기 전에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명분도 없고, 여론도 못 읽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당위성이 있다면 해야겠지만 이해하기 힘들다.

그동안 검찰은 경영 승계 관련해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했지만, 제대로 된 물증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이 법조계의 시각이다. 물증이 명확했다면 지금까지 끌고 갈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국민의 관심이 쏠린 사건이라 신중하고 또 신중했어야겠지만 1년 6개월이 지났음에도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비율도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받아서 했다는 삼성의 주장을 뒤집을 만한 증거를 입수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심증과 개연성은 충분하지만, 증거재판주의 원칙에 따라 증거가 없다면 범죄사실을 증명하지 못한다.

더욱이 검찰은 자신들이 만든 제도를 스스로 부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 부회장이 검찰의 기소가 적절했는지를 물을 수 있는 검찰수사심의위원회를 소집한 다음 날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누가 생각해도 '괘씸죄'로 보일 뿐이다. 이 부회장의 도주와 증거 인멸에 대한 가능성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그야말로 '보복'으로 판단될 수 있다. 우연한 '오비이락(烏飛梨落)'일까?

검찰은 이미 크게 한번 내상을 입었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핵심을 벗어난 수사로 인해 지탄을 받았다. 죄가 있다면 이를 밝히는 것이 검찰의 임무다. 그런데 자신들에 대한 개혁에는 똘똘 뭉쳐 이를 거부했다. 남의 죄는 주머니 속 먼지까지 탈탈 털었지만, 정작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서는 고개를 돌렸다. 이러니 검찰의 수사를 국민이 얼마나 신뢰할지 의문이다. 만일 법원이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누가 책임질 것인지 궁금하다. “증거를 보충해 다시 청구하겠다”는 말로 넘어가기에는 사안이 중대하다. 찔러보기식 구속영장 청구는 이미 구태라는 지적이 많다.

군대를 마치고 잠깐 법 공부를 했던 적이 있다. 법이 뭔지 궁금해서였다. 그런데 선친께서 내게 "최소한 법을 공부하려면 우선 사람이 돼야 한다. 그래야 치우치지 않고 공명정대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난 법 공부를 그만뒀다. '사람'이 될 자신이 없었다. 지금도 선친께서 말씀하신 '사람'과는 거리가 먼 듯하다. 법을 집행하는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말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