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무노조 경영' 50년 만에 깨지다
삼성, '무노조 경영' 50년 만에 깨지다
  • 최형호 기자 rhyma@dailyenews.co.kr
  • 승인 2019.11.21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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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16일 출범··· "노동자 권익은 스스로 챙겨야"
감정 호소 말고 '무노조경영' 비판 자세 견지해야

[데일리e뉴스= 최형호 기자] 50년간 '무노조 경영'을 이어온 삼성전자에게 변화가 일어났다. 삼성전자 노조가 설립된 것. 삼성전자노조는 지난 16일 공식 출범하고 본격 활동에 들어갔다. 이번에 설립된 노조는 삼성전자의 네 번째 노조다. 삼성전자에는 지난해부터 소규모 기업별 노조 3곳(한국총괄 2곳·네트워크사업부 1곳)이 설립돼 있다. 이번 노조가 관심을 끄는 이유는 한국노총 금속노련 소속으로 상급단체에 가입한 유일한 노조기 때문이다. 기존 3개 노조는 조합원이 모두 합쳐 수십 명에 불과했고 활동도 거의 없었다. 사실상 '유명무실'한 노조라 봐도 무방하다.

반면 이번 노조는 전국 단위 상급단체 기반으로 설립됐고, 500여명의 조합원을 확보했다. 상급단체의 지원을 받고 다른 노조들과 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는 해석이다. 업계 또한 이번 노조 창립에 대체적으로 반기는 분위기다. 삼성이 세계적인 기업 경쟁력에 상응하는 '노사관계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것.  다만 갈 길이 멀다. 그간 삼성의 노조설립 방해공작은 계속돼왔다. 기존 노조 3곳도 "삼성에도 노조가 있다"는 보여주기식일 뿐 실직적인 노조로 보기 어렵다는 시각이 많다.

또한 삼성전자 경영진들이 노조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방침으로 고수하고 있어 앞으로 경영진과의 대대적인 대립도 불가피하다.

그간 삼성은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노조는 안 된다"고 했던 고(故) 이병철 창업주, 이건희 회장, 이재용 부회장 3대를 거치면서 '무노조 경영'을 고수해왔다. 

삼성전자노조는 16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대회의실에서 출범식을 열었다. (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노조는 16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대회의실에서 출범식을 열었다. (사진=연합뉴스)

◆ 노동자 권익은 스스로··· "회사가 시혜 베푸는 것 아니야"

삼성전자노조는 16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대회의실에서 출범식을 열고 "삼성전자에 노동조합이 결성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했다.

노동자 권익은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지 회사가 시혜를 베푸는 챙겨주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입장이다. 지금과 같은 식이면 노사 간 민주적 절차는 사라지고, 회사의 강요는 계속될 것이란 우려는 지속된다는 것이다. 결국 노동자의 설 자리는 없어지고 회사의 강요와 회유로 인해 삼성전자는 계속해서 뒷걸음질 칠 것이라 주장했다. 

진윤석 삼성전자노조 위원장은 이날 "삼성전자에서 가장 변화해야 하는 것은 소통문화"라며 "회사의 강요가 아닌 민주적인 토론과 협상을 통해 합리적 방향으로 가도록 회사의 조직문화를 바꾸고 싶다"고 노조설립 배경을 설명했다.

진 위원장은 노조의 힘을 키우기 위해선 상급단체인 한국노총에 가입이 최선의 선택이라고도 했다. 전국삼성전자노조가 힘을 키우기 위해선 다른 삼성 계열사 노조와의 연대활동은 물론 LG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노총 산하 전자업계 노조와의 연대활동 또한 강화해나갈 필요가 있다는 것.

그는한국노총 가입에 대해 "조합원 투표를 통해 결정했다"며 "민주노총에 속해 있는 IT기업 노조 집행부와 한국노총 금속노련 산하인 SK하이닉스 노조 집행부 등을 만나본 결과 한국노총이 삼성전자에는 보다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조합원 수는 500여 명 안팎이지만 1만 명 조합원 수 확보를 1단계 목표로 시작해 향후 10만 명의 노조를 최종목표로 하고 있다"며 "삼성의 거대 노조 확보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공작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이 지난해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등의 혐의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 건물로 들어서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공작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이 지난해 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등의 혐의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 건물로 들어서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 노조와해 공작은 여전히 '걸림돌'

다만 삼성전자 노조의 생존 여부는 장담할 수 없다는 시각이 많다. 그간 삼성 직원들은 사측의 회유에도 노조를 설립해왔지만 그럴 때마다 삼성전자 경영진은 갖은 협박과 폭행 등을 자행한 사실이 'S(삼성)노조 노사전략 문건'에 의해 드러났다. 그간 삼성 직원들은 1962년 삼성생명보험, 1983년 삼성증권 등을 시작으로 삼성물산 에버랜드·삼성SDI·에스원·삼성웰스토리·삼성엔지니어링·삼성전자 서비스지회·호텔신라·삼성중공업 등에서 노조를 출범했다. 

그럴 때 마다 삼성 경영진은 감시·미행·협박 등 불법적인 행동을 앞세웠다. 지속적인 회유와 압박을 통해 고사시키고, 기존에 만들어진 어용노조를 활용해 노노갈등을 유발하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했다. 이 때문에 삼성노조들은 이렇다 성과 없이 활동을 접었다.

삼성이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와 삼성에버랜드 노조를 와해하기 위해 벌였던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공작 사건'이 최근 대표적인 노조 와해 사건이다.

이 사건은 현재 재판이 진행 중에 있으며 검찰은 지난 5일 결심 공판에서 이상훈 삼성전자 의장(사장)과 강경훈 부사장에게 징역 4년을 구형하는 등 관련자들에게 중형을 구형했다.

이외에도 삼성전자 경영지원실 인사팀장을 지냈던 원기찬 삼성카드 사장, 박용기 삼성전자 부사장, 정금용 삼성물산 대표에도 징역 3년이 구형됐으며, 노조와해 전략 수립 실무를 주도한 것으로 조사된 목장균 삼성전자 전무에게도 징역 4년이 구형됐다.

검찰 측은 "이 사건은 삼성그룹과 삼성전자, 삼성전자서비스로 이어지는 조직적 범죄로, 반 헌법적인 노조 파괴 범죄가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구형 이유를 설명했다. 1심 선고는 다음달 1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유영근)에서 열린다.

삼성의 노조 와해 공작 정황이 드러난 만큼 회사가 예전과 같이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란 시각이 많다. 하지만 노동자들 사이에선 노조 형성에 대한 당위성이 형성됐더라도 긴장의 끊을 놓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한다.

심성전자서비스지회 측은 "이제까지 사측과 대립각을 세웠기에 생존의 관점에서 자본으로부터 자주적인 노조가 돼야 한다"며 "자주성을 잃으면 (노조가) 파괴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했다.

이어 "삼성전자에 설립된 4개 노조는 서로 경쟁하지 말고 연대해야 한다"며 "삼성의 뻔한 갈라치기 수법에 당하지 않으려면 노조들 간 소통과 교류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재용 부회장.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부회장. (사진=연합뉴스)

◆ 향후 과제는

삼성전자 직원들이 노조를 설립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진 데는 직원의 뜻과는 상관없는 회사의 일방적인 처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수년 동안 연봉이나 복지, 경영성과급(PS) 산정 근거를 두고 직원들의 불만이 누적됐고, 결국 노조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실제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갤럭시 시리즈의 대성공으로 지난 2010~2013년 창사 이래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이후 애플의 아이폰, 중국 스마트폰의 세계 점유율 확대로 인해 2015년부터 실적이 꺾이더니, 2016년 갤럭시 노트7의 설계 오류로 인한 배터리 폭발한 사고로 스마트폰 사업 전 부분 매출이 급락했다. '삼성위기론'이 대두된 시점이기도 하다.

직원들 처우는 낮아질 수밖에 없었고, 특히 연봉 및 성과급을 책정하는 데 있어 직원들 의견은 무시한 채 사측이 일방적으로 산정했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50년간 이어온 무노조 경영 방침이 한계에 직면했고 삼성전자 직원들 사이에서도 노조 설립 움직임이 일었다. 결국 삼성전자 노조가 탄생했다.  

그러나 몇 가지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 노조가 설립되기는 했지만 추구하는 방향과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 업계도 이번 삼성전자의 노조 설립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국민이 바라보는 노조에 대한 시선은 그리 달갑지 않기에 확실한 방향을 정하는 게 급선무라 목소리를 높인다.

현대자동차노조가 '황제 노조'라 불리는 것처럼 삼성전자 또한 이 프레임에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노조가 나가야 할 방향으로 높은 임금인상 요구가 아닌 임금의 '정상화'에 방점을 둬야 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유미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은 "삼성의 무노조경영을 무조건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여러 오해를 낳을 수 있다"며 "삼성 스마트폰을 만드는 하청노동자부터 삼성에 관련된 노동자들이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된다면 사측에 의미 있는 메시지를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건준 민주노총 금속노조 경기지부 교육선전부장은 "삼성전자 노조의 존립을 위해선 기존의 방식을 넘어서는 다차원적 기획이 있어야 사측과의 투쟁에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최상의 결과는 이재용 부회장이 그간 고수했던 삼성전자의 무노조 경영 방침을 깨고 노조 자체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삼성전자 측은 전국삼성노조 출범과 관련해 21일 현재까지 어떠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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