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e뉴스= 천태운 기자] 언제부터 은행에서 발급하는 종이통장 개수가 공개할 수 없는 일급비밀이 되었단 말인가. 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은행은 올해 상반기 종이통장 발급 건수에 대한 자료 요청을 일제히 거부했다.
반면 농협은행과 기업은행은 언론에 자료를 선뜻 공개했다. 특히 농협은행은 대도시에 영업점이 몰려있는 4대 은행에 비해 지방에 지점을 많이 보유하고 있어 60세 이상 어르신들의 종이통장 이용 비율이 높다. 인터넷과 모바일 등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들에게는 종이통장이 편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속담에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고 했던가. 시중은행 4곳은 '자료 제공이 어렵다', '공개 불가하다', '파악하는 데 장시간이 소요된다', '관련 부서에서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등의 변명을 늘어놓았다.
1급기밀도 아닐텐데 이들 4대 시중은행은 왜 통장 발급 건수를 공개를 그토록 꺼리는 걸까. 자칫 언론에 자료를 공개했다가 예상치 못한 꼬투리라도 잡힐까봐 염려를 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그간 은행들은 온실가스의 주범이자 미세먼지의 원인으로 지목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에 투자해 막대한 시민·환경단체에 반발을 샀다. 여기에 종이통장을 만드는 데에 필요한 종이는 모두 나무를 베야만 만들 수 있어 자칫 자연환경을 파괴한다는 오명까지 뒤집어 쓸까 두려워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고객이 은행에서 저축하기 위해 종이통장 개설이 필수인 때가 있었다. 이때 시중은행들은 통장 발급 건수가 실적과 같다는 생각에서인지 계좌 신설을 열심히 홍보하기도 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종이통장 발급보다 비대면 거래가 확산되며 모바일과 인터넷뱅킹이 일반화되면서 종이통장이 사라지고 있다. 은행들은 종이통장 발급 건수보다 비대면거래를 통한 실적 향상이 해당 은행의 핀테크 산물이라며 자신들의 우수성을 강조하고 있다. 발행 종이통장 개수는 빛 바랜 훈장이 돼버렸다.
금융당국은 금융거래 관행 혁신 방안으로 종이통장 발행을 단계적으로 축소해 무통장 거래를 정착시킬 계획이다. 이에 따라 내년 9월께 신규로 은행계좌 개설 시 종이통장 발급을 원하는 고객은 원가의 일부를 부담하게 된다. 은행통장 제조 원가와 창구 직원의 인건비 여기에 나무를 베야 하는 환경훼손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는 것일지 모른다. 얼마나 많이 이들이 종이통장을 포기하고 디지털 통장으로 갈아탈지 모르겠다. 아무튼 여전히 종이통장이 많이 사용되고 있음에도, 심지어 영업 결과의 상징이기도 했던 통장 개수를 속 시원히 못밝히는 이유를 모르겠다. 평소에 구린 것이 많아 언론에 숨기려고만 했던 버릇이 나온 게 아닌가 싶어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