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현대차가 포드나 페라리가 되려면?
[기자수첩] 현대차가 포드나 페라리가 되려면?
  • 최형호 기자 rhyma@dailyenews.co.kr
  • 승인 2019.12.17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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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호 경제산업부 팀장.
최형호 경제산업부 팀장.

[데일리e뉴스= 최형호 기자] "보통 명품으로 인정받는 차들은 브랜드의 정체성과 그간의 역사가 존재합니다. 뿌리를 찾기 위한 작업을 등한시하지 않은 거죠. 현대차가 명품 자동차 반열에 오르기 위해선 반드시 이 작업을 거쳐야 합니다."

자동차 전문가가 이런 말을 했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현대차가 과연 명품차 반열에 오를 수 있을지, 혹은 '가격 싸고 성능 좋은' 대중차에 머물러야 할지 기로에 섰다는 생각이다.

지난 4일 개봉한 자동차를 소재로 한 영화 '포드 V 페라리'를 보면 이들이 왜 명품 반열에 오를 수 있었는지 답을 찾을 수 있다. 기술과 성능은 차치하더라도 미국과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두 경쟁사의 역사가 생생히 전달됐다. 영화에선 포드 대표인 헨리포드2세는 1950년대 자사의 차가 쉐보레 임팔라와 같은 다른 양산 브랜드에게 판매량에 밀리자 해결책을 구해오라고 전 직원에게 통보한다. 그렇지 않으면 해고를 하겠다고 엄포를 논다.

마케팅 담당자인 리 아이아코카는 지금과 같은 양산에 목을 매는 평범한 대중차로서는 위기를 타파하기 어렵다며 '섹시하고, 강하고, 승리하는' 자동차가 포드에 있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어 그는 "페라리를 배워야 한다"며 "페라리는 완벽을 추구했고 결국 완벽해졌다"고 피력한다. 아이아코카는 페라리를 인수하자고 제안하고 헨리포드2세는 수락한다. 이탈리아로 페라리의 수장 엔초 페라리를 만난 아이아코카. 그러나 엔초는 포드 모터스와 방문한 임원들 그리고 회장인 헨리 포드 2세에게 악담을 퍼부으며 협상을 결렬한다. 화가 난 헨리포드2세는 페라리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당시 최고의 레이싱 경기였던 르망24에 참가해 승승장구하는 페라리를 짓뭉개고 포드를 '레이스 메이커'로 우뚝 서게 하겠다고 선언한다. 

헨리포드2세의 말처럼 포드는 GT40을 제작 1966년부터 1969년까지 르망24에 우승한다. 이후 포드는 지금과 같은 자동차 양산기법을 유지하고 라인업도 확장한다. 머스텡, 링컨, 리무진이 전통과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대표적인 포드 차다. 또한 매년 경주차(레이싱카)를 개발해 현재 명품차로 거듭난다. 페라리 또한 당시 피아트에 인수됐지만, 여전히 페라리만의 장인 정신이 깃든 명품차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기호학처럼 페라리 타고다니면 "돈 많은 사람이구나"라고 인식할만큼 아무나 탈 수 없는 고가의 명품 차다. 두 사의 뿌리와 역사는 이탈리아 마라넬로에 '페라리 박물관'과 미국 미시간주 디어본에 위치한 '헨리 포드 박물관'에 고스란히 보존됐다.  

그렇다면 현대차는 어떤 역사를 지녔을까. 현대차는 회사의 이익이 우선이었던 두 사와는 달리 대한민국 근대사와 궤를 같이했다. 페라리와 포드완 분명 다른 행보였다. 대한민국은 정부 주도로 산업화가 된 나라다. 자동차 산업 역시 정부 주도로 이뤄졌다. 현대차는 먹고 살기 바빠 차의 뿌리와 정체성은 생각지도 못하는, 대한민국 경제의 한 축을 반드시 책임져야 하는 '소년‧소녀가장'이었던 셈이다. 

당시 대한민국은 정부가 자립경제체제를 구축하고 제1차 경제개발5개년(1962∼1966년) 계획을 수립했다. 동시에 자동차공업 5개년 계획을 세워 정부 주도로 자동차 산업을 육성하기 시작했다. 현대차는 국가 경제의 한 축이 돼 파란만장한 인생을 사는 시발점을 맞이한 셈이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1940년대 초 아도서비스라는 자동차 정비 공장을 인수해 1943년 사업을 그만둘 때까지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이 수익금으로 1946년 서울 명보극장 인근에 현대자동차의 밑바탕인 현대자동차공업사를 열었다. 이후 정 명예회장은 수공업 방식으로 우리 손으로 직접 자동차 부품과 자동차를 제작했다. 엔진도 장인 혼자 수십 년에 걸쳐 만드는 페라리의 제작 과정과 비슷하다.

성과는 대단했다. 1973년 독자 모델 개발에 착수해 1974년 제작된 포니가 대표적인 예다. 이 해 10월 '제 55회 토리노 모터쇼'에 포니 쿠페를 출품했는데 예상 외의 호평을 받았다. 4단 수동변속기와 4기통 1300㏄ 엔진의 조합으로 50마력을 내는 포니는 5인승 4도어 해치백 디자인으로 이탈리아 출신 조르제토 쥬지아가 디자인했다. 1975년 12월 울산 공장에서 50대가 생산된 포니는 이듬해 1월부터 본격 생산에 들어갔다. 포니의 국산화율은 90%, 스타일, 엔진성능, 주행성, 경제성, 사후서비스 등 다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포니는 시판 첫해인 1만726대가 팔렸으며 남미 에콰도르에 포니 5대를 수출, 자동차 산업이 수출 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신호탄을 쐈다.

하지만 국가가 개입해 불운한 역사를 맞이하며 시련을 겪는다. 현대차는 정부 주도로 사업을 시작해 ▲경제불황 ▲자동차보유 억제정책 ▲수요 감소 ▲완성차 판매부진 ▲경영난 ▲부실기업화라는 악순환을 되풀이하며 성장했다. 판매가 부진하거나, 내수가 불안할 땐 정부 눈치를 봐야 했다. 그만큼 차를 대량 생산해 국내뿐만 아니라 유일한 시장이었던 남미에서 싼 값에 차를 팔아야 했다.

모듈 방식을 세계 최초로 도입한 것도 자동차 대량 생산과 라인업 확장을 위해서다. 전통과 뿌리보단 먹고 사는 게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엔진 등 기술개발은 뒷전에 밀렸다. 대게 다른 수입차들은 라인업에 따라 그에 걸맞은 엔진을 장착한다. 그러나 현대차는 디자인만 다를 뿐, 다른 라인업에 같은 엔진을 장착했다. 심지어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현대차는 흔한 경주용 자동차조차 없었다. 포드가 명품차로 성장했던 과정과는 사뭇 다른 행보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서 'i30 N TCR'을 개발, 가끔 비 메이저 경주차 대회에 출전해 우승하기도 한다.

현대차는 아무도 따라올 수 없는 현대차만의 정체성을 지녔다. 바로 '오뚜기 정신'이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토종차'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것도 현대차다. 세계로 확장해봐도 '토종'브랜드를 이어오고 있는 나라는 독일, 미국, 일본 등 손에 꼽힐 정도다. 일례로 명품차로 인정받는 롤스로이스, 벤틀리, 재규어, 랜드로버, 미니는 모두 인수되거나 소유권을 넘겼다. 롤스로이스와 미니는 독일 BMW로, 벤틀리는 독일 폭스바겐으로, 재규어, 랜드로버는 인도의 타타그룹으로 각각 소유권이 넘어갔다.

현대차는 일제 강점기 낙후된 산업 환경에서 살아나 토종차 명맥을 이어오면서 50여 년 만에 세계 5위의 브랜드로 성장했다. 세계 190여개 국 가운데 자동차를 생산하는 국가로 인정받는 나라는 10개국에 불과하다. 이 중 자동차 역사가 50여 년에 불과하면서도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대국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 그것도 현대차가 유일하다. 분명 대단한 성과지만 이제는 명품차로 인정받기 위해 한 발 더 나아가야 할 때다. 세계의 눈에 비친 현대차는 여전히 싸고 성능 좋은 대중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를 탈피하기 위해 현대차는 제네시스 브랜드를 만들었지만 '재규어 따라한 차', 'BMW는 아니지만 BMW 비슷한 차'인 카피모델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자동차 업계는 명품차에 반열에 오르기 위해선 현대차만의 정체성, 그리고 '오뚜기 정신'을 바탕으로 한 뿌리와 역사를 보존하는 작업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이를 스토리텔링으로 엮을 수 있는 박물관도 건립돼야 한다고도 했다. 세계인들이 현대차를 보는 시각이 "도대체 어디서 왔니?"에서 "이것이 현대자동차"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명품차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얘기다. 고무적인 부분은 현대차는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충분한 기반을 갖췄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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