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네거리, 삼거리, 코너, 대로변 등에 어지럽게 걸려 있는 정치 현수막이 뜨거운 감자가 됐다. 국회가 지난해 12월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옥외광고물법)을 개정한 후 정당 현수막이 수도 없이 내걸렸기 때문이다.
옥외광고물법 제8조 8항은 “정당이 통상적인 정당 활동으로 보장되는 정당의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에 대해 (광고물을) 표시·설치하는 경우 허가·신고 및 금지·제한에 관한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돼 있는데 이를 근거로 정당들이 상대방을 비방하는 현수막을 맘대로 내걸고 있다.
주민들의 민원이 빗발치자 시·도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를 개정, 정당별로 부착할 수 있는 현수막 수와 부착 장소를 제한하자 행정안전부는 상위법인 옥외광고물법이 먼저 개정돼야 한다며 지자체의 현수막 제한에 제동을 거는 모양새다.
시내 곳곳에는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등이 현수막을 닥지닥지 걸었는데 내용은 한결같이 윤 대통령 비난, 정부 비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비판 등이다. 상대방을 민망할 정도로 거친 말로 비난하고, 욕하는 것들이다. 정책이나 공약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현수막 공해가 얼마나 심각할까? 한번 보자. 올해 1분기(1-3월) 전국에서 발생한 폐현수막은 1315t이나 된다. 2분(4-6월)기에도 1418t 발생했다. 올해 1-6월에만 2732t의 현수막이 철거 됐는데 4t 트럭으로 700대분에 가깝다. 어마어마하다.
지난해 5~7월 치러진 8대 지방선거에서는 1557.4t의 폐현수막이 발생했다. 올해는 선거철도 아닌데 6개월 동안 2732t의 현수막이 철거됐다. 현수막을 도대체 얼마나 많이 걸었으면 2732t에 달하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러니 현수막 공해가 심각하고, 주민들이 철거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현수막 난립은 엄청난 폐기물을 양산한다. 도시미관도 해친다. 네거리, 삼거리 등 사람이 많은 곳이 온통 현수막으로 도배가 돼 보기 흉하다. 현수막이 시야를 가리고, 운전에도 방해된다. 사고 위험성이 크다는 얘기다. 상인들에게도 피해를 주는데 현수막을 마구잡이로 걸면 가게 간판이 안 보여 장사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
가장 좋은 해법은 국회가 옥외광고물법을 개정해 무분별한 정치 현수막을 스스로 제한하는 것이다. 현행 규정은 국회의원 등 정치인의 현수막은 무제한 걸 수 있고, 철거도 할 수 없는데 이런 조항부터 손을 봐야 한다. 그런데 국회의원들이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게 문제다.
이에 인천시는 지난 5월 조례를 개정해 정당 현수막을 강제로 철거하고 있는데 현수막은 지정한 게시대에만 걸어야 한다. 정당 현수막은 국회의원 선거구별 4개 이하로 제한했다. 선거구 하나에 최대 4개까지만 현수막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인천시가 시민 2000여명을 대상으로 현수막 철거에 대한 반응을 조사했는데 응답자의 87.5%가 조례를 위반한 정당 현수막은 강제로 철거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주민 대다수가 상대방을 비난하고 험담하는 현수막 철거를 잘하는 일로 여긴다는 뜻이다.
행안부는 현수막을 담당하는 정부 부처인데 정치인이 만든 옥외광고물법과 시·도 등 지자체가 만든 조례 개정안 틈바구니에 끼어 어정쩡한 입장이다. 어떤 형식이든 정치 현수막을 막아야 하는데 위로는 국회가 버티고, 아래에서는 지자체가 치밀어 난감할 것이다.
이제 정치 시즌이 다가온다. 정치인들은 현수막을 여기저기 걸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도시 미관을 해쳐 주민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행안부는 옥외광고물법을 개정해 혐오스러운 현수막 설치를 법으로 막아야 한다. 국회가 개정하지 않으면 행안부가 개정안을 마련하면 된다. 국민이 현수막 공해에 시달리지 않게 해야 한다.
[데일리e뉴스= 김병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