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e뉴스= 전수영 기자] 전기자동차용 배터리를 놓고 소송전을 벌이고 있는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조기 패소'를 두고 다시 한번 정면충돌했다.
두 회사의 소송전은 자동차업계뿐만 아니라 트럼프 정부에도 고민거리가 되고 있어 결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3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업계에 따르면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불공정수입조사국(OUII; Office of Unfair Import Investigation) 등 3대 주체는 재판부 요구에 따라 입장을 재정리한 2차 의견서를 이달 6일과 11일에 각각 제출했다.
LG화학은 의견서에서 "SK이노베이션은 계획적이고 고의적으로 증거를 훼손·은폐했다. 자사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면 SK가 입증해야 하지만 SK는 입증도 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또다시 SK이노베이션의 패소를 요청했다.
이에 SK이노베이션은 "일부 증거 보존 면에서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긴 했으나 고의성은 없었고, 소송이 제기된 후에는 전 사적으로 증거 보존을 위해 노력했다"면서 LG화학의 요청을 전부 기각해달라고 요청했다.
앞서 지난달 15일 LG화학에 찬성하는 의견서를 제판부에 제시했던 불공정수입조사국은 이번 2차 의견에서도 “여전히 SK 패소 판결 요청을 수용해야 한다”고 전과 같은 의견을 유지했다.
조사국은 “SK이노베이션은 증거 훼손은 여타 다른 사례와 비교해 정도가 심하다고 판단한다”며 “ITC의 포렌식 명령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데에도 악의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ITC는 10월 SK이노베이션이 영업비밀 침해 소송과 관련한 중요 정보를 담고 있을 만한 문서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LG화학의 요청을 받아들여 포렌식 조사 명령을 내린 바 있다.
이후 LG화학은 11월 초 SK가 고의적·조직적으로 소송 전·후 광범위하게 증거를 인멸하고 명령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며 재판을 SK 패소로 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OUII는 LG화학 의견에 찬성하는 의견서를, SK이노베이션은 반박 의견서를 11월 중순에 차례로 제출했다.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자 재판부는 주요 쟁점을 다시 정리해서 의견을 내라고 했고, 이에 따른 2차 의견서도 각 주체 모두 전과 같은 입장임을 재확인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9일 '왜 세계 자동차 산업이 한국의 한 분쟁을 우려하나'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ITC 조사국은 LG화학 편을 드는 쪽으로 기울어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미국 내 배터리 생산 공장을 늘리고 싶어하는 트럼프 행정부가 SK이노베이션에 관대한 결론이 나길 원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는 SK이노베이션이 패소할 경우 관련 제품은 미국 내 수입금지가 된다. 이 경우 북미 지역 전기차 배터리 공급에 차질이 생겨 자동차 산업은 피해를 볼 수 있다. 이는 미국 내 자국 배터리 생산 공장을 더 늘리고 싶어한다는 점을 WSJ은 지적했다.
WSJ은 "이 건은 결국 거부권을 가진 미 무역대표부(USTR) 선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예상했다. ITC 소송에서 LG화학이 승소하더라도 미국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