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호 칼럼] 친족간 결혼 금지 4촌으로 축소 어떻게 봐야 하나
[김병호 칼럼] 친족간 결혼 금지 4촌으로 축소 어떻게 봐야 하나
  • 김병호 기자 bhkim@dailyenews.co.kr
  • 승인 2024.03.06 08: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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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족간 결혼 금지를 현행 8촌에서 4촌으로 축소하는 문제를 두고 나라가 시끄럽다. 근친결혼으로 인해 인륜이 무너진다는 목소리도 있고, 외국의 경우 4촌 간 결혼을 허용하는 나라도 있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과천 정부 청사에는 혼인 금지 축소와 법무부의 연구 용역 철회를 요구하는 1인 시위가 벌어지는데 시위를 하는 사람은 성균관유도회총본부의 간부들이다. 혼인 금지를 4촌으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문제의 발단은 이렇다. 2022년 10월 27일 헌법재판소는 우리 민법 815조 2항이 8촌 이내의 혈족 간 혼인을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데 이게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헌법에 맞지 않으니 2024년 12월 31일까지 해당 조항을 고치라는 것이다. 

법무부는 위헌 판결이 난 민법 조항을 고치기 위해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현소혜 교수에게 민법 815조 2항을 어떻게 고쳐야 할지 연구 용역을 주었는데 현 교수는 현행 8촌을 4촌으로 축소할 것을 제안했다.

보고서에서 현 교수는 “5촌 이상의 혈족과 가족으로서 유대감을 유지하는 경우가 현저히 감소했다”며 혼인 금지 범위가 현행 8촌 이내 혈족에서 4촌 이내 혈족으로 축소돼야 한다고 했다. 4촌까지는 결혼을 못하고, 5촌부터는 결혼을 할 수 있도록 하자고 했다.

4촌이면 삼촌의 아들과 딸, 고모의 아들과 딸, 이모나 외삼촌의 아들과 딸이다. 4촌은 너무 가까워 형제란 말이 붙어 있다. 5촌도 먼 친척이 아니다. 아버지나 엄마의 4촌이 나에게는 5촌이다. 아주 가깝다.

법무부가 친족간 결혼 금지를 4촌 이내로 확정한 것은 아니다. 다만 연구 용역 결과가 나왔고, 법무부는 혼인 금지를 어디까지로 할지 의견을 더 수렴한다는 계획이다. 연구 용역에 파문 일고 있는 것은 이 문제가 그만큼 뜨거운 감자라는 얘기다.

성균관과 유림 측은 내주 서울 여의도에서 친족 간 혼인 범위 축소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를 연다고 한다. 유림이 전국에서 여의도로 집결해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유림이 반대해도 칼자루는 법무부가 쥐고 있는데 근친혼 금지 범위가 현행 8촌에서 대폭 낮아질 것은 분명하다. 연구 용역 결과가 4촌 이내로 나왔고, 시대도 많이 바뀌어 성씨, 가문, 씨족, 문중, 조상, 경노사상 등이 점차 퇴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연구 용역대로 4촌까지 결혼이 금지되고, 5촌부터 허용된다고 하면 4촌, 이종4촌, 고종4촌의 아들딸과 결혼이 가능하다는 얘기가 된다. 사실상 집안 간의 결혼이다. 예식장에 가면 촌수를 따지고, 족보를 따지는 게 복잡해진다.

근친결혼은 옛날 유럽이나 중동 등의 왕가에서 가문을 유지하기 위해 행해졌다. 가문은 보존되지만 기형이나 잘못된 아이가 태어나는 경우가 많은 게 문제다. 자손이 부모만 못한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질병을 가지고 아이들이 태어나기도 한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유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 결혼, 장례, 집안의 행사 등 전통문화의 뿌리가 유교다. 8촌 이내 결혼을 금지한 것도 유교에 뿌리가 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가 이를 위헌이라고 판결했으니 사회적 파문은 불가피하다.

유림은 결혼 금지 범위를 낮추면 “인륜이 무너지고 족보가 엉망이 된다. 성씨 자체가 무의미하다”며 반발한다. 유림의 입장에서는 반발할 만도 하다. 그런데 젊은 층 등 일부에서는 사랑이 중요할 뿐 촌수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법무부가 최종안을 마련해도 찬반 논란은 한동안 계속될 텐데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결혼 금지를 4촌으로 낮출 수도 없고, 그렇다고 위헌 판결받은 법을 그대로 둘 수도 없다. 전통과 시대적 흐름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가 문제다.

[데일리e뉴스= 김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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