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e뉴스= 전수영 기자] 지난주 온 가족 나들이로 홍익대학교 앞을 찾았다. 사실 홍대 앞을 찾은 이유는 큰아들이 며칠간 노래를 불렀던 지펜(G펜)을 사기 위해서였다. 지펜은 만화를 그릴 때 주로 쓰는 펜이다. 펜촉에 'G' 모양의 알파벳이 새겨져 있어 흔히들 그렇게 부른다. 나무로 된 펜대에 펜촉을 꽂아 잉크를 묻혀 그림도 그리고 글씨도 쓴다. 가끔 배경이 1960~70·80년대 영화를 보면 만년필 나무에 펜촉을 꼽아 쓰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지펜과 별반 차이가 없다.
어릴 적 추억을 회상하며 화방 주인에게 슬쩍 국내산 만년필촉이나 G펜은 없냐고 물으니 "없다"는 대답과 함께 "국내에서 이런 제품을 생산하는 곳은 없다. 팔리는 게 거의 없는데 누가 이걸 만들겠느냐"고 오히려 되물었다. 화방 주인의 말대로라면 국내 G펜은 일본제품이 시장 점유율 100%인 것이다. 낚싯대와 골프채의 샤프트에 사용되는 카본수지도 대부분 일본제품이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일본제품은 우리 주변에 셀 수 없이 널려 있다. Made in Korea라고 원산지 표기가 돼 있지만 원재료가 대부분 일본산이다 보니 국산품이라고 부르기가 애매한 경우도 부지기수다.
정부는 반도체, 미래형 자동차, 전자제품 등에 사용되는 일본제품을 대체할 국산품 연구개발(R&D)에 막대한 예산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원자재 독립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고 미래에 많은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기에 지금이라도 R&D에 나선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럽다.
하지만 해당 산업 분야에만 매몰되면 안 된다. 낚싯대, 학용품, 골프채 샤프트 등 시장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수요가 계속해서 발생하는 곳도 챙겨야 한다. 모든 산업 분야를 한꺼번에 할 수 없기에 순서를 두고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시장이 작다고 해서 모른 체해서는 안 된다.
우연히 읽게 된 누군가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주인 본인은 업무에 반드시 일본 자를 쓴다고 했다. 수치를 재는 자인데 꼭 일본제품을 써야 하나 의아했지만 그는 일본제품과 우리나라 제품의 눈금에 차이가 있어 국산품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 아닐 수 있지만 그는 일본제품이 우리나라 제품보다 낫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정부는 원재료에 대한 국산화율을 높이는 것과 동시에 일본제품이 더 낫다는 인식도 함께 바꿔야 할 것이다.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시장에서 팔리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다시는 그 제품을 만들려는 국내업체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도 일본제품이 무조건 국산품보다 좋다는 맹목적인 확신을 버려야 할 것이다. 100년 전 군사침략을 했던 일본은 현재 경제침략을 자행하고 있다. 이 침략을 이겨낼 국민의 지혜와 힘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