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근로 여건이 너무 열악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들 노동자의 여건이 열악하다는 것은 다 아는 일이지만 설문 조사를 통해 구체적인 실태가 밝혀진 것은 의미가 크다.
직장갑질119가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조사했는데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67.9%가 지난해 6일 미만의 연차 휴가가 사용했다고 한다. 쉽게 말해 10명 중 7명이 연차를 제대로 못 쓰고 있다는 얘기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사용자는 1년간 80% 이상 출근한 근로자에게 15일의 유급휴가를 주어야 한다. 3년 이상 계속 근무한 근로자에게는 가산휴가를 포함한 총 휴가 일수는 25일을 한도로 한다. 근로자들이 연차를 손꼽아 기다리는 이유다.
조사에 따르면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가운데 지난해 15일 이상 연차를 썼다는 응답은 고작 12.1%에 불과할 정도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5인 미만 사업장에는 근로기준법상 연차 휴가 규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5인 이하의 작은 기업에 다니는 것도 소외감을 느끼는데 쉴 권리조차 없다는 뜻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응답자 중 연차 휴가는 9일 이상 12일 미만이 17.3%, 15일 이상 16.3%, 12일 이상 15일 미만 15.0%, 6일 이상 9일 미만 13.6% 순이었다.
고용 형태로도 연차 사용에 차이가 크다. 상용직(정규직) 응답자의 20.3%가 연차 휴가 사용일 수가 6일 미만이었다고 답했는데 비상용직(비정규직)은 무려 64.0%에 달했다. 비정규직이 반발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연차 사용이 조직적으로 방해받기도 했다. 당일 연차 사용을 요청했다는 이유로 해고를 통보하거나 진단서 증빙을 강요하기도 했다. 근거 없이 3일 이상 연차를 붙여 사용하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사용자가 연차 휴가 사용을 방해한 예다.
이와 반대로 연차 사용을 압박한 경우도 있는데 한 회사는 공장에 재고가 많다는 이유로 연차를 쓰도록 했다고 한다. 또 다른 회사는 회사 대표 개인 사정으로 휴업하게 된 동안 일방적으로 연차를 사용하도록 강요한 게 문제가 되기도 했다. 회사 대표의 개인적 생각에 따라 연차 사용을 막기도 하고 사용을 압박하기도 한다는 얘기다.
설문조사를 했던 직장갑질119는 “연차휴가, 휴업수당 외에도 직장 내 괴롭힘 방지, 연장근로 제한, 공휴일 및 연장·휴일·야간근로 가산수당 등 규정이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새로 구성될 22대 국회와 정부는 더 이상 미루지 말고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1년을 성실히 근무하면 15일, 3년 이상 근무하면 25일을 연차로 쓸 수 있는데 이는 노동자들에게 엄청난 기회이고 찬스다. 근로자라면 이 좋은 기회를 이용해 가족과 여행을 가거나 자기 계발의 시간을 만들 수 있다.
이처럼 좋은 기회를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누리지 못하고 있다니 안타깝다. 공직자나 대기업 등 잘 나가는 사람들은 연차, 월차 등 찾아 먹을 것을 다 찾아 먹는데 5인 이하에서는 이를 제대로 찾아 먹지 못한다.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이 바로 이런 것이다. 거창하게 국가 경제, 서민 경제 등을 논의하는 것도 좋지만 연차도 제대로 못 사용하는 근로자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공직자나 괜찮은 직장 다니는 사람은 내버려 둬도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다. 연차도 못 쓰는 사람을 위한 정치가 펼쳐져야 한다.
21대 국회는 수명을 다했고, 이제 22대 국회에서 이런 문제를 논의해야 하는데 정치권은 열린 마음으로, 정쟁을 벗어 던지고,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의 어려움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이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법률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
[데일리e뉴스= 김병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