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전염병도 막지 못한 '의지'
[기자수첩] 전염병도 막지 못한 '의지'
  • 천선우 기자 bluecat@dailyenews.co.kr
  • 승인 2020.03.03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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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선우 경제산업부 기자
천선우 경제산업부 기자

[데일리e뉴스= 천선우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으로 전 세계가 얼어붙었다. 원인불명의 이 바이러스는 현재 총 8만8804명의 확진자를 발생시켰고 30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 기세가 실로 무서울 지경이다. 백신이 없는 전염병이 맹위를 떨치면서 불안감이 일상 전반에 번져있다.

불과 몇 개월 사이 바깥 풍경은 사뭇 달라졌다. 재택근무가 일상이 되고 밖에 나가지 않는 게 안전한 세상이 됐다. 사람이 밀집한 곳에 들어서면 더욱더 신경이 예민해진다. 혹여나 재채기라도 하는 순간,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내야 하기 때문이다. 겨울은 분명 끝나가고 있는데 코로나19로 마음속에는 찬바람이 일고 있다. 안 그래도 각박한 세상이 더 각박해졌다.

국내 경제도 최악의 상황이다. 확진자가 4800명을 돌파하면서 민생과 경제·산업 기반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소비와 투자는 멈췄고, 일부 사업장은 문을 닫았다. 특히 중국과 직접적인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국내 기업들은 죽을 맛이다. 단적인 예로 '와이어링 하네스' 부품 하나에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이 '올스톱(All Stop)' 된 걸 보면 알 수 있다.

감염병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된 대구·경북 지역 시민과 영세업자들의 고충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이 지역 시민들은 길거리조차 마음 편히 다닐 수 없는 게 현실이 됐다. 확진자만 3800명에 달하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수십 명씩 확진자가 나오는 마당에 평소처럼 길거리를 활보하기란 쉽지 않다. 북적이던 대구 동성로는 생기를 잃었고, 거리는 황량한 여백만이 남아있다.

그러나 냉혹한 전염병이 전국을 휩쓸고 있지만 우리의 '선한 의지'는 꺾지 못했다. 기업을 비롯해 의료진, 연예인, 시민 등이 자발적인 지원 의사를 밝히면서 희망의 씨앗이 싹트기 시작했다. 의료 영역은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대구 병원에서 인력난을 호소하자 전국 각지에서 500여 명에 달하는 의사·간호사들이 모여든 것. 바이러스의 공포마저도 이들의 의지와 열정을 잠재우지 못했다. 최근에는 광주광역시는 삼일절을 맞아 대구 경증환자들의 격리치료를 위해 선뜻 수용 의사를 밝혔다. 새삼 놀랍다. 국가적 위기가 지역주의와 당파 논쟁을 허물고 있다.

위기는 곧 기업들의 인식도 변화시켰다. 기업들은 치열했던 경주를 잠시 멈추고 코로나19로 고통받고 있는 대구·경북 지원을 위해 팔을 걷었다. 삼성은 300억을 쾌척했고 그 뒤를 이어 현대 자동차, SK 등을 비롯한 국내 유수의 대기업들이 앞다퉈 후원했다. 심지어 기업들은 대구·경북에 소재한 자사 연수원·연구시설을 흔쾌히 치료시설로 제공했다. 분명한 것은 이들 상황 또한 녹록치 않았다는 점이다. 기업들은 코로나19 여파로 매출과 수익에서 큰 타격을 받았다. 2월 기업경기실사지수는 2003년 이후 최대 하락 폭을 기록했다. 비관적인 전망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기업이 총대를 메기란 결코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간 기업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숫자의 논리와 계산 등 셈법만 따져왔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달랐다. 국민의 고통을 분담하려는 진정성 있는 행보를 선택하면서 전국에 따스한 온기를 나눴다.

우리는 위기의 순간마다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DNA'를 발동해왔다. 역사 속 흐름을 보면 그렇다. 나라가 어려움을 겪으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공동체' 하나로 의기투합해 대응해왔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금모으기' 운동이 그랬고, 기름 유출 사고로 태안이 피해를 입자, 전 국민이 모여 자원봉사자로 나선 점도 그렇다. 당시 태안 갯벌에 찍힌 수많은 발자국이 이를 증명한다. 악재가 거듭될수록 우리의 국민성은 더 강하게 응집했다. 코로나19는 분명 무서운 전염병이다. 치료제조차 개발되지 않았고 사망자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이 보여준 '선한 의지'는 좀처럼 수그러들 기세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개개인의 작은 불씨가 모여 거대한 열기로 이어지고 있다.    

충북 괴산에선 익명의 농부가 코로나19 극복에 써달라며 100만원이 담긴 봉투를 내밀고 홀연히 사라졌다. 지폐에는 숱한 손때가 묻어있었다. 작은 액수지만 마음만은 절대 작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도 1년간 농사로 현장을 오가며 어렵게 벌어들인 돈인 만큼 농부의 피땀 흘린 노력의 흔적들일 터다. '조은일에 써달라. 죄송하다'고 맞춤법이 틀린 글씨와 투박한 문체의 편지였지만 농부의 진심이 더해졌다. 전국에서 대구·경북을 향한 '애정'과 '걱정'이 전달되고 있다. 기적은 진심을 수반할 때 비로소 발현된다. 국민의 '선한 의지'가 모여 코로나19도 슬기롭게 극복하는 새 역사를 써내려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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