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살균기 '코로나19' 오인 문구에도 정부는 강 건너 불구경만 할 것인가
[기자수첩] 살균기 '코로나19' 오인 문구에도 정부는 강 건너 불구경만 할 것인가
  • 천선우 기자 bluecat@dailyenews.co.kr
  • 승인 2020.03.12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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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선우 경제산업부 기자
천선우 경제산업부 기자

[데일리e뉴스= 천선우 기자] 대한민국 전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전염 공포에 휩싸였다. 동시에 마스크 품귀 현상이 빚어지면서 불안감도 점차 커지고 있다. 현재 시장에 풀린 마스크는 동이 난 상태로 쉽게 구할 수도 없는 형국이다. 정부가 늘어나는 마스크 수요에 매점매속 단속, 5부제 시행 등 교통정리에 나섰지만, 상황이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근 대체 품목이 떠오르고 있다. 다름 아닌 기존 마스크를 재활용해서 쓸 수 있는 'UV-LED(자외선 발광다이오드) 살균기'다. 마스크 구매가 어려운 현 상황에서 새로운 선택지로 급부상 중이다. 몇몇 판매 업체 측에 문의해보니 살균기 제품 중 대다수가 매진되거나 제한된 수량으로만 판매됐다. 3월 중순쯤에나 새 물량이 입고될 정도라 하니 그만큼 찾는 이들이 많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상품 설명만 보면 소비자가 혹할 내용이 많다. 판매페이지에선 '코로나19 예방', '마스크 무한 사용', '살균력 99.99%' 등의 과대·오인 요소가 다분한 문구가 등장한다. 광고 내용대로라면 판매 업체는 '백마 탄 왕자님'으로 비견돼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정부조차 해내지 못한 대안책을 업체에서 이뤘으니 말이다. 

문제는 업체가 홍보하는 내용 중 일부는 사실과 다르다는 점이다. 이들은 UV-LED 살균기가 특별하다고 주장한다. 마치 이 제품을 쓰면 코로나19마저 사멸될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UVC-LED를 제조하는 복수업체 관계자에 따르면 코로나19 바이러스 멸균력 검증 실험은 국내외를 통틀어 진행된 사례가 없다. 일부 해외 기관에서 바이러스 관련된 검증 실험이 이뤄졌으나, 이마저도 인플루엔자, 간염 등의 항목이 전부다. 

살균기 업체는 주로 코로나바이러스와 코로나19에 명시된 '코로나'라는 단어를 혼용해 판매한다. 이는 '기망'의 사유로 명백한 표시광고법 위반이 될 소지가 높다. 코로나19는 중증 폐렴 등 호흡기질환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코로나바이러스와 엄연한 차이가 있다. 내막을 모르는 소비자가 보면 해당 바이러스가 멸균될 것처럼 자칫 오해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판매 업체들은 한술 더 떠 코로나바이러스 멸균 검증서, 특허 인증, 해외 논문 등을 줄줄이 내세우며 의심의 여지를 원천 차단하고 있다. 결국 살균기 판매 업체들의 '거짓말'로 점철된 돈벌이에 국민들이 놀아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을까. 식품의약품안전처에 관련 내용을 묻자, 본인 소관이 아니라며 공정거래위원회로 책임을 떠넘겼다. 살균기가 공산품에 속하니 공정위가 모니터링을 통해 단속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상투적이고 뻔한 답변이다. 이미 매진행렬로 수많은 살균기 제품이 시중에 유통된 것에 대한 책임과 반성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단속 의지도 마찬가지다. 당장 포털에서 '코로나19' 키워드만 치면 관련 업체들이 쏟아져 나오는 판국에 공정위가 제대로 단속을 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정부 주관으로 바이러스 멸균력 검증도 이뤄져야 할 것이다. 현재 온라인상에 떠도는 검증서 등의 판단은 오로지 국민의 몫이다. 실험기준이 제각각 달라 사실상 신뢰할 수 없는 수준이다. 국가표준기술원은 바이러스 멸균 검증을 외부 기관에서 진행한다며 제품성능은 다루지 않는다는 원론적 답변만 내놨다. 의심할 바 없는 전형적인 공무원의 행태다. 이 시간에도 국민 중 누군가는 안심하고 상품을 구매하고 있을 것이다. 정부는 작금의 사태에 근시안적 사고만 고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UV-LED 살균기 제품은 유행처럼 번져가고 있다. 이미 각종 블로그 후기와 매진행렬을 기록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한번 시기를 놓치면 대중화된 인식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과거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통해 뼈 아픈 교훈을 얻었다. 2001년 '옥시'가 가습기 살균제 성분으로 PHMG(카펫 항균제)를 쓰기 시작했지만 흡입 독성 실험을 누락했다. 당시 국내에선 흡인(吸引) 유해성을 평가할 수 있는 시설은 단 두 곳뿐이었다. 2003년에는 기업 측이 PHMG 성분이 호흡기로 흡입 시 위험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정부에 제출했지만, 국내 제조사에는 알리지 않았다. 결국 2011년 사단이 터졌다. 가습기 살균제는 연간 60만 개씩 팔려나갔고, 총 249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켰다. PHMG는 무려 11년이 지나서야 유독 물질로 지정됐다.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가 인적 재난을 일으킨 것이다. 

역대 정부는 사망 사고나 큰 사건이 터져야 부랴부랴 수습에 나섰다. 국민이 마스크가 부족하면 주변 제품에 눈을 돌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살균기는 마스크 공급만큼이나 국민의 안전과 목숨이 달린 초유의 문제로 인식하고 대처해야 한다. 부서를 막론하고서라도 말이다. 정부 차원에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조성할 필요성이 있다. 나아가 잘못된 광고로 소비자를 기만하는 업계에는 철퇴가 가해져야 한다. 코로나19 만큼이나 살균기는 더 큰 인식의 '전염병'이다. 더 이상 수수방관해서는 안 된다. 특히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정부'라면 말이다. 

(사진=보건복지부)
(사진=보건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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